- 무거중학교의 풍수(風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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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중학교는 금계포란지형 (金鷄抱卵之形)에 위치하고 있는데
새의 보금자리나 닭이 알을 품는 둥지와 같은 형국을 ‘금계포란지형’ 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풍수에 자리를 잡으면 대가 끊이지 않고 자손이 번창 하는 길지(吉地)라고 한다.
무거중학교에서 삼호 뜰을 지난 태화강을 바라보면 이런 곳을 일러 회룡자좌(回龍子坐)의 지상이라 하며 서북쪽의 물이 정동으로 흘러드는 신수입진(申水入辰) 하는 곳(서출동류 하는 곳)으로써 감여가들이 일러“최고의 지상”이라 손꼽는 곳 이였으니, 이런 곳이라야 오래토록 세대를 이어나갈 수 있는 터이며 대대로 인물이 많이 나올 지상이라고 할 수 있다. - 문수산(文水山)의 유래
- 문수(文水)란 문수보살은 지혜의 완성을 상징하는 보살로 '훌륭한 복덕을 지녔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신라 때 문수보살이 산세가 청량하고 아름다워 여기에 살았다고 해서 처음에는 청량산으로 부르다가 문수산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신라가 쇠망할 때 문수보살이 동자로 나타나 경순왕에게 신랑의 멸망을 예언 해주고 이 산에서 은거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문수산은 울산의 진산이다.
- 무거동(無去洞) 지명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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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경순왕을 안내하던 동자승이 자취를 감추어 없어진 곳이라 하여 무거라 불러졌다.
정조때는 무거 내리와 신복리로, 고종때는 무거동과 신복동, 삼호동으로 갈라져 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 이를 합하면서 무거라 하였다.
울산, 언양간 고속도로 및 국도7호선에 위치한 남구의 관문지역으로 울산대학교 및 울산과학대학, 초중고 학교가 위치한 교육 밀집지역으로 고층아파트 및 건물신축으로 유입인구가 급증하는 신개발지역이다.
무거동의 유래는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순왕이 통도사에 가서 법회도 갖고 큰스님도 만나려고 차비를 하고 길을 나섰다.
왕을 태운 어가는 이윽고 울산쪽으로 접어들게 되었다.
모든 사람들이 땅에 엎드려 왕에 대한 예를 표하고 있는데 반해 어떤 조그만 동자 하나는 그저 웃으면서 길 가운데 떡 버티고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어가를 호위하던 군사들이 동자를 보고서
이놈,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어린 것이 길을 막고 있느냐? 냉큼 길을 비켜라!!!
군사들의 호통에도 아랑 곳 하지 않고 동자는 여전히 생글생글 웃고만 있을 뿐이다.
화가 난 군사들은 그 동자를 잡아서 혼내주려고 했다.
재빨리 달려가 동자를 잡으려 하면 어느새 동자는 저만치 뒤로 물러서 있는 것이다.
또 달려가 잡으려 하면 역시 동자는 똑같은 거리만큼 저만치 뒤로 달아나 있었다.
이러기를 몇 차례 반복하다가 갑자기 동자가 길에서 사라져버렸다.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군사들과 신하들이 웅성거리면서 어가를 잠시 세웠다.
경순왕이 신하와 군사들에게 물었다.
지금까지 일어난 일을 소상하게 아뢰거라...
신하는 길 가운데 있던 동자가 없어지게 된 경위를 소상하게 아뢰었다.
이야기를 다 들은 경순왕이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펴보다가 물었다.
여기가 어디쯤 되는 곳이냐?
옆에 있던 신하가 아뢴다. 여기는 문수산 자락 아래이옵니다.
음... 그러냐? 그렇다면 필시 조금전 그 동자는 사람이 아니고 문수보살이니라...
문수보살이 화현해서 내게 가르침을 주시고자 함이니 경들이 그걸 몰랐을 뿐이니라.
통도사행을 취소하고 어가를 돌려 어서 궁으로 돌아가자...
경순왕의 어가는 급히 경주로 되돌아갔다.
결국 힘이 약해져가는 신라를 더 이상 지탱하기 어렵다 판단하여 왕건에게 나라를 바쳤던 것이다.
동자가 없어져(無) 가버린(去) 곳이라 하여 무거리라 부르다 무거동이 되었다.